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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3월 22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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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광훈 목사 날짜20-03-19

본문

         <본문> 마태복음26장17~35절    <찬송> 288장, 218장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는 요즘과 같은 사순절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주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지셨던 십자가와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의미를 잘 묵상하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소망 중에 만나뵈어야 하는 기간이죠. 그런데 하필이면 이 사순절 기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서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내기는커녕 예배드리는 일마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들은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기에 오늘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하셨던 성만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순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저녁 만찬의 앞부분에서는 가롯 유다의 배신을 다루고 있고 이 뒷부분에서는 수제자 베드로의 배신을 이야기함으로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예수님이 얼마나 고독하게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고 계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제가 보니까 사람이 어려운 고난에 빠졌을 때 그 고난 자체도 견디기 힘들지만 고난 못지 않게 힘든 것이 그 동안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입니다. 내가 잘나가고 가진 것이 많았을 때에는 항상 내 주변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내가 고난에 빠지고 어려움에 처하면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혹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나를 멀리하고 만남을 거절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든 일로 인하여 자살 하는 사람들의 원인을 잘 살펴보면 그 일자체가 주는 절망감보다 그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조리 깨어지고 결국 혼자가 되어버리는 외로움 때문에 스스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시는 예수님도 이와 같은 철저한 외로움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 그토록 신임하셨던 가롯 유다의 손에 의해 로마군인들에게 팔리고 또한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도중에 도망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유월절 성만찬을 통하여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먹이시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마지막 행하셨던 이 성만찬의 의미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어 볼 텐데요 그전에 성만찬 사건을 앞뒤로 싸고 있는 가롯 유다와 다른 제자들의 배신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보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가룟유다의 배신입니다. 제가 저번 시간에 가룟 유다에 대하여 잠간 언급하기는 하였으나 이 시간에 조금 더 자세하게 이 가롯 유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보통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 앞에 붙어있는 것은 출신 지명을 의미할 때가 많은데요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용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통틀어 몇 백개 정도의 이름을 가지고 번갈아 사용 하였는데요 그러다보니 그 이름이 같은 경우가 굉장히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만을 가지고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그 앞에 출신 지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가롯 유다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란 이름의 뜻은 가룟 지방 출신의 유다라는 뜻인데요 이 가롯이라고 하는 곳은 이스라엘 남부의 네게브 사막 지역에 있는 마을로서 여호수아서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가롯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00km정도 남쪽에 있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이 가롯 출신의 유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멀리서부터 찾아온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다른 11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지만 이 가롯 유다는 스스로 찾아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줄 사람인줄 알았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기에 그를 제자로 받으셨습니다. 2125절.

 

   이처럼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주님을 팔아넘길 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마지막 만찬자리에 까지 가룟유다를 초청하시고 먹이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절을 보시면 이 가롯 유다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느낄 수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의 여러 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정말로 가롯유다가 불쌍하셨다면 주님의 능력으로 가룟유다의 마음을 돌리도록 하실 수 있었을텐데 왜 예수님은 그냥 내버려 두셨을까? 여기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에덴 동산 때부터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원칙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에덴 동산 때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뱀과 하와 사이에 개입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 죄와 싸워 이겨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선택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이미 프로그램 된 로봇처럼 무조건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하시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가롯 유다의 자유 의지대로 예수님을 은전 30에 팔도록 그냥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자신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팔아넘기는 이 가롯유다를 매우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이러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도 알지 못한 채 결국 인류역사상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잘 따른다고 자부하였던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은 어떠하였나요? 31. 지금 읽으신 문장에 나오는 그 때는 성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기 위하여 감람산으로 이동하시는 도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그날 밤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데 예수님이 밤에 잡혀가실 때 너희 제자들은 모두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을 들은 제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하였나요? 33.

 

   다른 제자들이 말하기도 전에 성질 급한 베드로가 먼저 나서서 말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버릴지 몰라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대답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제자들을 얕잡아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인이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용기가 있으면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되지 괜히 가만 있는 다른 제자들을 비하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한 것이고 이렇게 말하는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다른 제자들의 믿음보다 자신의 믿음이 더 우월하다고 하는 교만한 생각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를 망각하였습니다. 33절에 보면 결코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결코 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라는 의미로 완전한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는 단어이지 연약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어리석은 답변을 들은 예수님은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지에 대해서 알려 주십니다. 34.

 

   베드로는 그동안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주님이 베푸시는 기적과 놀라운 사건들을 지켜보았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까지 하였습니다.그렇다면 주님이 하시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데도 그 고집이 얼마나 센지 예수님께 한마디도 지지 않습니다. 35절  베드로는 제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였고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의 말을 들으며 우리 예수님은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슬펐겠습니까? 이들이 주님을 떠나고 부인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데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주장하면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참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과 저주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도망갈 것을 다 알고 계셨으나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마지막 저녁 만찬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도 이미 사랑하셨고 또한 마지막까지 사랑하셨음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세상 사람 모두에게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주제인 성 만찬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7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7절의 시간적 배경은 유월절 당일입니다. 유월절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저녁 만찬을 나누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도 이 유월절 만찬을 위하여 예수님께 준비를 어떻게 할지를 묻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 저녁만찬 준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18,19지금 읽으신 말씀은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도 있습니다. 유월절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까요?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안에 사는 아무한테나 가서 그 사람에게 우리가 당신 집에서 유월절 저녁 식사를 할 테니 그리 알고 준비해달라고 이야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하게 전하고 있는 다른 복음서의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227-12.

 

   지금 읽으신 말씀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내에 들어가면 물동이 가지고 가는 사람이 보일테니 그를 따라가서 그가 사는 집 주인에게 말하면 우리가 유월절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다락방을 내 줄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이 우연처럼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우연이고 그의 집주인에게 마침 비어있는 다락방이 있는 것도 우연이고 그 집주인의 마음이 움직여서 그 다락방을 내어준 것도 다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동안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제 분명히 확신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 속에서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 그래서 하나님이 그때 그리하셨구나 라고 감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교회도 지금 커다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믿고 이 모든 것들을 다시 회복하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이미 예비하신 다락방 만찬장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드디어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십니다. 26이 말씀에 나오는 떡은 무교병입니다. 무교병이란 그 안에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떡인데요 이것은 성결함을 의미하고 아무 죄 없으신 우리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성결한 몸을 상징하는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데 이 떡이 떼어지는 것은 장차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살이 찢겨지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떡을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떡을 받아 먹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6:56-58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6:56-58

 

   이 말씀에서처럼 우리가 성찬에서 떡을 먹는 것은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성찬 떡에 대해 조금 재밌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요즘 저희 드림의 교회에서는 성찬 떡으로 둥글고 하얗고 납작한 전병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죠? 그것을 드셔보시면 아무런 맛도 없는데요 원래 무교병이 그렇게 아무런 맛도없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전에 있었던 교회에서는 이 성만찬에 사용하는 떡을 무교병이 아니라 달콤한 카스테라를 잘라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역자들이 회의를 하였는데 성찬에 이 카스테라를 사용하는 것은 본래의 뜻과는 너무 차이가 나니 무교병처럼 아무 것도 넣지 않는 떡을 만들어서 성만찬에 사용하자고 하였고 드디어 성만찬 날이 되어서 그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흰떡을 성찬으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떡을 먹고 난 사람들의 표정이 다 떨뜨름 해지는 겁니다. 오랫동안 달콤한 카스테라를 먹다가 갑자기 아무 맛도 없는 떡을 주니까 다들 당황하신거죠? 그런데 성찬이 끝나고 두 분 집사님이 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거에요. 오늘 떡은 어째 좀 맛이 없네? 권사님이 떡에 설탕 넣는 것을 깜박했나봐?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 떡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이 떡을 먹으면서 주님 제 안에 들어오시옵소서. 제가 주님을 모신 성전으로서 이 땅을 거룩하게 살아 가겠습니다. 라고 다짐 하는 시간이 바로 성찬 예식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이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27, 28. 예수님은 잔에 포도주를 부으시고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어 달리심으로 그 보혈의 권능에 힘입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김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시인하고 이제부터는 그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여 의인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성만찬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의 몸을 의미하는 무교병을 먹음으로 내 몸이 주님을 모시는 이 땅의 거룩한 성전이 되었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신 우리들은 주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답게 이 땅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또한 주님의 피를 의미하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저 십자가에서 보혈 흘려주셨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내가 또 다시 죄악 중에 살아간다면 주님을 어떻게 뵐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대신 피흘려주신 이 일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혹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베풀어주십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수제자 베드로나 다른 모든 제자들 마저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갈 것을 이미 아셨지만 그 배신감 속에서도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에게도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고 베드로에게도 그리고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베풀어주셨던 이 주님의 사랑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모두가 구원받았음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제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임을 깨닫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만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제 나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세째로, 우리 모두는 주님의 핏값으로 대속 받은 하나님의 소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모든 일을 주님 손에 맡겨드리고 순종함으로 이 어려운 시기 오직 우리 주님만이 주시는 능력으로 인내하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인생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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