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두려움의 바이러스" (3월15일, 주일설교)

페이지정보

작성자 신영준 목사 날짜20-03-14

본문

        <본문> 이사야41장8~14절    <찬송>543장, 91장

 

   지난 주, 드디어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펜데믹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감염병이 특정나라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대유행으로 확산된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사재기로 인해 마켓 진열대가 텅텅 비고, 이탈리아는 전 국민 이동금지령이 내려 유명 관광지가 유령화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스크대란으로 인해 열차표를 구하려는 귀성행렬처럼 길게 늘어선 인파모습을 보노라면, 지금 전 세계인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공포의 心理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도 보듯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큰 소리 치는 인간이지만, 막상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도 마스크 쓰고 손 닦는 것 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쩔쩔매며 두려워 떠는 모습이, 바로 연약한 인간의 실존임을 인정하게 만들며 더욱 하나님 앞에서 겸허해져야할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에는 경제문제, 실패, 능력한계, 질병, 자연재해, 사고, 미래의 불확실성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죽음입니다. 결국 인간의 삶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행위로 인해 영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번에 불행 중 다행인 점은 한국교회의 암적 존재였던 신천지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므로, 저들의 종말이 10년은 앞당겨졌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다면 은밀히 勢를 확산해서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할 뻔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의  핵심교리는 요한계시록을 中心으로 한 육체영생교리에 있습니다. 즉 마지막 종말의 때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육체를 지닌 채로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택함 받은 14만4천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는, 교주 이만희가 시키는 대로 수단방법 안 가리고, 전도하고 교육받으며 家出은 물론 이혼까지 불사하게 만듭니다. 이번에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신천지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니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음성화되며 온갖 거짓말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신천지 교인들은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그릇된 교리에 현혹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요즘 모든 것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연관되다보니, 필요이상으로 지나친 걱정과 두려움에 짓눌려 지내게 됩니다. 어쩌다 기침만 해도 혹시 나도, 저 사람도, 감염된게 아닌가?라고 의심하며 경계하곤 합니다. 한자에 ‘기우’(杞憂)란 쓸데없는 걱정을 뜻합니다. 中國의 기(杞)나라에 살던 사람이 항상 하늘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하다가, 급기야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게 되었다는 古史에서부터 나온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지나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문제를 회피하려들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하는 의지를 상실하고 맙니다. 창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후 동산 숲속에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찾으시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불순종하므로, 믿음이 흔들리고 약해질 때 엄습하는 부정적 감정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에 처할 때 마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회복을 위한 신앙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전염병의 위협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이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힘쓰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노예생활을 하던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이 60년을 넘어서자 점점 두려움 빠져 절망이 고조되어, 아무 희망도 없이 고통스런 삶을 하루하루 연명해 나가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와같은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선포토록 하셨습니다. 本文 10,13,14절과 43장1,5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시므로, 무너졌던 성전을 재건하고 잃었던 나라를 회복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두려움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I)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믿으라.(하나님의 소유)

 

    8절上: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9절中: “너는 나의 종이라” 10절中: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13절: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고백해야합니다. 43장1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일찌기 아브라함 때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選民언약을 맺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잘못의 대가로 일시적인 바벨론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저들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8절: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며  마치 친구처럼 친밀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9절下: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며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범죄하여 어둠에 방치된 채로 두려움에 떨며 고통당할 때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부어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막강한 힘을 지닌 사람이 내 후견인이 되어 도와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요? 하물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主, 아버지가 되셔서, ‘너는 내 것이라’고 인정해주시니 세상에 이보다 더 감사하고 복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간혹 사람들은 말로는 ‘걱정 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도 정작 도와줄 능력이 없어서 책임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 설령 능력이 따른다 해도 결정적 순간에 가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이 없으신 全能하신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종, 나의 벗, 나의 것이라’고 불러주시며,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감사하며 감격스런 일입니까? 우리 모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던 다윗처럼, 양이 목자를 의지하고 종이 주인을 의지하며 자녀가 부모를 의지하고 백성이 군주를 의지하듯이, 불안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므로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이 사라질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노래와 찬송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II)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라.(하나님과 동행)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43장5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모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냥 멀리서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요, 오히려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셔서 늘 함께 하시며 당면한 모든 형편을 헤아리시고 실질적으로 도와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 속성 상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십니다. 따라서 당신의 자녀들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 절대 외면하거나 마음으로만 동정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한 그 어떤 삶의 현장에라도 친히 찾아오셔서 함께 동행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해도 저 하늘 높이 거하시며 나와 거리가 먼 곳에서 방관하고 계신다면, 절박할 때 그 분의 보호와 구원을 요청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막연한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면,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물리치는데 별로 도움을 못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며, 불꽃같은 눈으로 언제 어디서나 감찰하시면서 눈동자 같이 지켜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비유컨대, 인생살이는 매 순간이 축구경기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을 차는 순간과도 같아서,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고 늘 초조함과 두려움 속에서 지냅니다. 아무리 손흥민 선수처럼 실력이 뛰어나다해도 100% 골을 보장 못하기 때문에, 페널티 킥을 찰 때마다 실축의 압박감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설령 우리에게 그 같은 순간이 닥쳐온다해도, 0.1%의 실수도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해주시기만 하면, 百戰百勝의 결과가 확실히 보장되기에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며, 주님과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믿음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히4장15절: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인간의 喜怒哀樂 직접 경험했기에, 늘 우리 편에서 함께하시며 이해하고 도와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바다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줄 알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내니 두려워 말라”며 배위에 오르시자 비로소 제자들 마음에 평안이 넘치며 파도가 잔잔해졌습니다.(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됨) 2차 세계대전 당시 英國의 작은 배가 군사적 임무 띠고 美國 行을 시도했는데, 중간에 적함과의 조우를 피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주위에서 잠수함이 비밀리 동행하면서, 무전을 통해 敵艦의 위치를 알려주며 호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항해 가운데 예측불허의 폭풍우가 몰아쳐온다해도, 절대 두려움에 빠져 항해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시며 배의 키를 붙잡고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면, 우리가 목표하는 항구에 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III)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줄 믿으라.(전적 위탁)

 

    10절中: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3절: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 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 임이니라.” 14절: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이 말씀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거듭 반복해서 강조하시기를 “내가 도와주고 붙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토록 참되신 하나님께서 “참으로”라는 약속을 두 번씩이나 하면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그 무엇이겠습니까? 이 같은 약속의 말씀을 되새길 수록, 우리 마음 속에 큰 위로와 평안이 임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 들어 되돌아보니, 가장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 없이 지냈던 때는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음. 왜냐하면 그때는 생각이 단순해서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모든 걸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에는, 자기 혼자서 모든 문제 짊어지고 해결하려들다보니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녀인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모습을, 위에서 지켜보시며 힘차게 응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간혹 힘에 부쳐 넘어지거나 다시 일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쓰러져 있을 때면, 지체치 않고 경주장 안으로 뛰어 들어오셔서 직접 일으켜 세우시며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실족할까봐 주저하며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전적인 믿음을 지닌 채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신앙적 노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믿음으로 도움의 손을 내미는 자세입니다. 즉 0.1% 의심의 불순물 없이 순도100%의 믿음을 지닌 채로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맡기는 全的 위탁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도 의로운 오른 손으로 나의 손목을 붙잡아 일으켜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역시 위기의 순간 다가옵니다.(솔직히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자될 수도 있어요)그렇다면 불신자와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렵고 힘든 위기의 순간에 처할수록, 신앙인으로서 지닌 믿음의 진가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때는 만사형통할 때가 아니라, 도리어 요즘처럼 두려움에 처할 때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우리는 백신이나 치료법도 없이, 그저 바이러스의 전파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하는 막연하고 두려운 현실에 처해있지만, 주변 환경의 지배를 받아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함몰되지 말고, 오직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며 담대히 극복해 나가야합니다. 그렇게하면 나를 엄습해오던 두려움의 요소가 더 이상 크게 보이지 않고, 나를 도와주시려고 두팔을 벌리고 계시는 예수님만 보이게 되므로 최후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순교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들이 자기 목을 겨누는 칼을 바라보거나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더미를 바라보면, 두려운 마음에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上의 예수님을 바라보니 담대한 마음이 주어져서 능히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세상 것들보다 예수님이 더 크게 보이는 눈이요, 주님 음성이 더 선명하게 들리는 귀이며, 주님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예수님께 나의 모든 것을 거는 올인(all-in)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그리할 때 요일4장18절의 말씀처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 福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모든 일을 주님 손에 전적으로 맡기므로,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두려움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파도는 한 번도 같은 모양으로 밀려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닷가의 파도가 매번 다른 모양으로 꼬리를 물고 밀려오듯이, 우리네 인생살이 中에도 그 내용과 크기만 다를 뿐, 온갖 유형의 두려움은 계속해서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가 연속해서 발병하듯, 앞으로도 예측불허의 질병은 끊임없이 창궐하며 괴롭힐 것입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발표한 소설 “페스트”는,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전염병 페스트가 알제리의 작은도시에 다시 창궐하면서, 10개월간 사투를 벌이게 되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린 내용입니다. 그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립니다.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 세계를 두려움 속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는 인류를 위협할 마지막 감염 병이 아닙니다. 언제가 인간은 또 다시 알 수없는 변종바이러스로 인해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허해져야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기위해  끊임없이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향해 수시로 엄습해오는 예측불허의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1)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심을 믿으라   (2)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라  (3)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심을 믿으라

우리 모두 어려운 때 일수록,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가며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지니므로, 각자의 마음을 엄습하는 두려움의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otal 98 / 2 페이지
교회소식 목록
번호 제 목 작성자 날짜 조회
열림 "두려움의 바이러스" (3월15일, 주일설교) 신영준 목사 20.03.14 87
89 가정예배와 큐티가 더욱 중요해졌다 박원준 목사 20.03.13 37
88 예배당 문이 닫혔을 때 정우 목사 20.03.13 44
87 교회소식(3월15일, 사순절 셋째주일) 관리자 20.03.11 67
86 온라인 헌금시 부탁의 말씀 재정부 20.03.10 50
85 참회의 기도 오대식 목사 20.03.08 39
84 교회의 사회적 책임 주승중 목사 20.03.05 68
83 교회소식(3월8일, 사순절 둘째주일) 관리자 20.03.05 83
게시물 검색